정치와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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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연님께서 이전 게시판에서 김대중대통령의 무식한 의견을 들어 다음의 문제들을 짚어나가신다던 글을 읽었습니다.
(1) 조선 유교를 보는 기존의 관점에 대한 반성 - 3가지 측면에서
(2) 어떻게 해서 성리학(또는 주자학)이 조선의 지배적 사상이 될 수 있었는가
(3) 그리고 왜 주자학은 보수적으로 흘렀으며, 끝내는 망국의 사상으로 몰락하고 말았는가
(4) 조선 유교와 불교, 천주교, 동학과의 관계
(5) 結 - 조선 유교의 실패는 율곡학파 유교의 패권적 운영의 실패, 16세기 유학정신에 코드를... 그리고 21세기 유학의 가능성
저는 이 중 3번과 5번의 조선유교의 실패를 무척 고대하고 있는데 혹시 이미 제가 모르는 곳에 글이 올라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정말 궁금한 것은 유교의 실패보다는 사림파의 정치적 실패입니다. 고려말에 신진사대부가 부흥하면서 조선을 건국하여 나라를 세워갈 때 이미 유가의 정치적 현실적 가치는 입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철학이 그렇게 성공적으로 건국의 바탕이 될 수 있었습니까. 플라톤도 베이컨도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나라를 세워보고 싶어했지만 모두 비참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은거하면서 학문적 깊이를 더해가고, 백성 가까이에서 국가의 문제들을 조정에서보다 더 잘 파악할 수 있었을 이 사림파학자들. 그들은 여러 번의 사화까지 겪으면서 정치권의 문제들까지 가슴깊이 체험했을텐데도 왜 이들이 정치권을 장악하고 난 후엔 오히려 더 내리막길이었을까요.
저는 이것이 붕당정치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파들이 나뉘어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전통이자 훌륭한 문화유산입니다. 그러나 선비문화 1호에서도 나왔듯이 병자호란과 같은 사태는 누가 보더라도 "자유로운 의사 개진의 정치적 분위기"라고 할 수 없으며 이러한 정치적 추태는 임란 이후 조선말까지 줄곧 이어져 오지 않습니까.
저는 요즘 이런 문제들이 한참 궁금하던 차입니다. 이념적으로 너무 깊어지면서 이기논쟁처럼 유학자들은 논리싸움은 가능하지만 정치를 맡겨서는 안되는 그런 사람들이 된 것일까요? 그럼 철학자는 정치를 해선 안 되는 걸까요. 또는 조선왕조는 이미 왕조국가의 특성상 내부적으로 부패의 과정에 들어갔으므로 그게 유학자였든 무엇이었든 상관없었던 걸까요. 하지만 이런 대답은 마치 병자호란 당시 포위된 상태에서도 척화주화를 싸우던 것을 두고 "자유로운 의사 개진의 정치적 분위기"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으며 사실 무책임합니다.
저는 자랑스러울 것과 비판할 것이 세심하게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민족우월주의나 사대주의나 근거없는 열등감 모두 피해야 할 것들입니다. 남명학연구원님들을 비롯하여 많은 동양학을 하시는 분들께서 연구하시는 것들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전형적인 서양교육을 받고 서양학을 전공한 저 같은 사람에게도 배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시간 나시면 특히 (3)과 (5)번에 대해 어느 분이라도 의견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고 조사연님께서 이미 글 올리신 게 있다면 알려주시면 가서 보겠습니다.
그럼 여러 가지로 감사드립니다. 모두 한 해 만사 형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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