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105. 배명원(裵明遠)
페이지 정보
본문
□ 약전(略傳)
배명원(裵明遠, 1542~1593)의 자는 군회(君晦)이고 호는 월정(月汀)이며, 본관은 분성(盆城)으로 합천(陜川)에 거주하였다. 그는 1542년(중종 37년)에 태어났고 1572년(명종 5년)에는 동생과 함께 남명선생을 병문안 하였다. 그는 성격이 강정(剛正)하여 과거를 일삼지 않고 의리(義理)를 강구(講究)하였으며, 기축옥사 때 제현들과 더불어 최영경의 신원소를 올렸다.
의병활동 : 1592년(선조 25년)에 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아우 형원(亨遠)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곽재우와 호응하였다. 후에 초유사 김성일이 조정에 아뢰어 성주목사에 특배되었고, 성주진영 병마첨절제사가 되었다.
향사 : 그는 1593년(선조 26년)에 진중에서 세상을 떠나자 사후에 명곡서원(明谷書院)에 배향되었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배명원(裵明遠, 1542~1593)의 자는 군회(君晦)이고 호는 월정(月汀)이며, 본관은 분성(盆城)으로 합천(陜川)에 거주하였다. 그는 1542년(중종 37년)에 태어났고 1572년(명종 5년)에는 동생과 함께 남명선생을 병문안 하였다. 그는 성격이 강정(剛正)하여 과거를 일삼지 않고 의리(義理)를 강구(講究)하였으며, 기축옥사 때 제현들과 더불어 최영경의 신원소를 올렸다.
의병활동 : 1592년(선조 25년)에 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아우 형원(亨遠)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곽재우와 호응하였다. 후에 초유사 김성일이 조정에 아뢰어 성주목사에 특배되었고, 성주진영 병마첨절제사가 되었다.
향사 : 그는 1593년(선조 26년)에 진중에서 세상을 떠나자 사후에 명곡서원(明谷書院)에 배향되었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