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109. 강렴(姜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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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강렴(姜濂, 1544∼1606)의 자는 연락(沿洛)이고 호는 만송(晩松)이며, 본관은 진양(晋陽)으로 단성(丹城)에 거주하였다. 그는 은열공(殷烈公, 姜民瞻)의 후손으로 1544년(중종 39년) 정월 16일에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그가 남긴 자료는 『만송실기(晩松實紀)』 1책이 전한다.
강렴은 17~18세(1560년~1561년)에 경사(經史)와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두루 읽고, 약관의 나이에 산천재에서 남명선생을 뵙고 경의(敬義)와 명성(明誠)의 가르침을 받았다(『德川師友淵源錄』, 卷4, 「門人續集」 姜濂).
그는 33세(1576년)에 덕천서원의 창건에 참여하였다.
1592년(선조 25년)에 왜란이 일어나자 강렴(49세)은 하수일(河受一)과 의논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저술 : 그는 『효경연의(孝經衍義)』, 『사례요해(四禮要解)』, 『아동연원록(我東淵源錄)』 등을 남겼으나 소실되었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姜 濂, 『晩松實紀』 1책.
강렴(姜濂, 1544∼1606)의 자는 연락(沿洛)이고 호는 만송(晩松)이며, 본관은 진양(晋陽)으로 단성(丹城)에 거주하였다. 그는 은열공(殷烈公, 姜民瞻)의 후손으로 1544년(중종 39년) 정월 16일에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그가 남긴 자료는 『만송실기(晩松實紀)』 1책이 전한다.
강렴은 17~18세(1560년~1561년)에 경사(經史)와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두루 읽고, 약관의 나이에 산천재에서 남명선생을 뵙고 경의(敬義)와 명성(明誠)의 가르침을 받았다(『德川師友淵源錄』, 卷4, 「門人續集」 姜濂).
그는 33세(1576년)에 덕천서원의 창건에 참여하였다.
1592년(선조 25년)에 왜란이 일어나자 강렴(49세)은 하수일(河受一)과 의논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저술 : 그는 『효경연의(孝經衍義)』, 『사례요해(四禮要解)』, 『아동연원록(我東淵源錄)』 등을 남겼으나 소실되었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姜 濂, 『晩松實紀』 1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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