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95. 변옥희(卞玉希)
페이지 정보
본문
□ 약전(略傳)
변옥희(卞玉希, 1539~1593)의 자는 득초(得楚)이고 호는 평천(坪川)이며,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그는 1539년(중종 34년)에 첨정(僉正) 명춘(命春)의 아들로 태어났다.
수학 및 교육 : 변옥희는 어려서부터 힘이 세었고, 담력이 뚸어나서 처음에는 무예를 익혔으나, 곧 학문에 뜻을 세워 남명선생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연구하면서 학자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의병활동 : 1592년(선조 25년)에 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전치원, 이대기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남성방어장(南城防禦將)으로서 많은 적을 무찌르고 여러 번 공을 세워 표창을 받았으나 미시령에서 전사하였다. 사후 그의 고향에 정문이 세워지고,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民族文化大百科辭典』 9.
변옥희(卞玉希, 1539~1593)의 자는 득초(得楚)이고 호는 평천(坪川)이며,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그는 1539년(중종 34년)에 첨정(僉正) 명춘(命春)의 아들로 태어났다.
수학 및 교육 : 변옥희는 어려서부터 힘이 세었고, 담력이 뚸어나서 처음에는 무예를 익혔으나, 곧 학문에 뜻을 세워 남명선생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연구하면서 학자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의병활동 : 1592년(선조 25년)에 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전치원, 이대기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남성방어장(南城防禦將)으로서 많은 적을 무찌르고 여러 번 공을 세워 표창을 받았으나 미시령에서 전사하였다. 사후 그의 고향에 정문이 세워지고,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民族文化大百科辭典』 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