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57. 도희령(都希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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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도희령(都希齡, 1539∼1566)의 자는 자수(子壽)이고 호는 양성헌(養性軒)이며, 본관은 성주(星州)로 함양(咸陽)에 거주하였다. 그는 1539년(중종 34년)에 아버지 득린(得麟)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그가 남긴 자료는 『양성헌실기(養性軒實紀)』가 전한다.
수학 및 교육 : 도희령은 처음에 당곡(唐谷, 鄭希輔)선생을 스승으로 섬겼다가 나중에 남명선생을 찾아 뵙고 경의(敬義)의 가르침을 배웠다.
과거 및 벼슬 : 도희령은 22세 때(1560년) 전시에 급제하였고, 정자(正字)로부터 홍문관 저작(弘文館著作), 봉상시 봉사(奉常寺奉事)등을 역임하였다.
강학 : 도희령은 27세(1565년)에 남명선생을 따라 지곡사(智谷寺)를 유람하였는데, 이 때 오건, 권문임, 정구(鄭構) 등이 모였다. 또한 단속사로 따라가 경의(經義)를 강론하였고 9월에 오건, 조종도 등이 운학정(雲鶴亭)으로 찾아왔다(『梅村實紀』).
28세(1566년) 봄에는 남명선생을 모시고 노진(盧示+眞), 강익, 김우옹 등과 산청의 지곡사에 모여 여러 날 동안 자연을 완상하며 시를 읊조리고 돌아왔다.
그는 남명선생이 감악산을 유람할 때에도 함께 모시고 갔는데, 포연(鋪淵)에서 「욕천(浴川)」이라는 시를 읊자, 이에 차운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都希齡, 『養性軒實紀』.
도희령(都希齡, 1539∼1566)의 자는 자수(子壽)이고 호는 양성헌(養性軒)이며, 본관은 성주(星州)로 함양(咸陽)에 거주하였다. 그는 1539년(중종 34년)에 아버지 득린(得麟)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그가 남긴 자료는 『양성헌실기(養性軒實紀)』가 전한다.
수학 및 교육 : 도희령은 처음에 당곡(唐谷, 鄭希輔)선생을 스승으로 섬겼다가 나중에 남명선생을 찾아 뵙고 경의(敬義)의 가르침을 배웠다.
과거 및 벼슬 : 도희령은 22세 때(1560년) 전시에 급제하였고, 정자(正字)로부터 홍문관 저작(弘文館著作), 봉상시 봉사(奉常寺奉事)등을 역임하였다.
강학 : 도희령은 27세(1565년)에 남명선생을 따라 지곡사(智谷寺)를 유람하였는데, 이 때 오건, 권문임, 정구(鄭構) 등이 모였다. 또한 단속사로 따라가 경의(經義)를 강론하였고 9월에 오건, 조종도 등이 운학정(雲鶴亭)으로 찾아왔다(『梅村實紀』).
28세(1566년) 봄에는 남명선생을 모시고 노진(盧示+眞), 강익, 김우옹 등과 산청의 지곡사에 모여 여러 날 동안 자연을 완상하며 시를 읊조리고 돌아왔다.
그는 남명선생이 감악산을 유람할 때에도 함께 모시고 갔는데, 포연(鋪淵)에서 「욕천(浴川)」이라는 시를 읊자, 이에 차운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都希齡, 『養性軒實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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