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62. 정지린(鄭之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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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정지린(鄭之麟, 1520~?)의 자는 인서(麟瑞)이고 호는 서암(棲巖)이며, 본관은 초계(草溪)로 서간(西磵)에 거주하였다. 그는 1520년(중종 15년)에 아버지 운(雲)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운은 남명선생의 큰 자형이다.
급문 : 정지린은 남명선생이 37세 때 입문(入門)한 최초의 남명제자이다(『南冥集』, 「編年」 37歲條).
일찍이 그는 남명선생에게 수업한 지 수년 만에 학문이 크게 나아가니, 남명선생이 기특하게 여겼고, 남명선생이 돌아가시자 스승의 복을 입었고, 기일(忌日)이 되면 반드시 재계하고 소복하기를 평생동안 하였다.
그는 43세(1563년) 8월에 박제현에게 찾아가서 정사(精舍)의 기문(記文)을 지었고(『松品+山先生文集』), 기묘사화(1579년) 이후로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정지린(鄭之麟, 1520~?)의 자는 인서(麟瑞)이고 호는 서암(棲巖)이며, 본관은 초계(草溪)로 서간(西磵)에 거주하였다. 그는 1520년(중종 15년)에 아버지 운(雲)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운은 남명선생의 큰 자형이다.
급문 : 정지린은 남명선생이 37세 때 입문(入門)한 최초의 남명제자이다(『南冥集』, 「編年」 37歲條).
일찍이 그는 남명선생에게 수업한 지 수년 만에 학문이 크게 나아가니, 남명선생이 기특하게 여겼고, 남명선생이 돌아가시자 스승의 복을 입었고, 기일(忌日)이 되면 반드시 재계하고 소복하기를 평생동안 하였다.
그는 43세(1563년) 8월에 박제현에게 찾아가서 정사(精舍)의 기문(記文)을 지었고(『松品+山先生文集』), 기묘사화(1579년) 이후로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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