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66. 방응현(房應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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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방응현(房應賢, 1524∼1589)의 자는 준부(俊夫)이고 호는 사계(沙溪)이며,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용성(龍城)에 거주하였다. 그는 1524년(중종 19년)에 아버지 한걸(漢傑)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그가 남긴 자료는 『사계실기(沙溪實記)』 1책이 전한다.
수학 및 교육 : 방응현은 일찍이 남명선생과 이항(李恒)선생의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닦았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과거에 나아가지 않았다. 향리의 사계천(沙溪川) 위에 집을 짓고 일생을 송시(誦詩)와 독서로 자적(自適)하는 가운데 과농(課農), 이포(理圃), 관개(灌漑), 화죽(花竹) 등 농학분야의 생리문제에 관심을 두었으며, 동향의 임란의병장 변사정과 친교가 두터웠다(『國朝人物考』).
서원창건활동 : 방응현은 56세(1579년)에 유림의 공의로 노진(盧禛)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기지방(현 금지면)에 고룡서원(古龍書院)을 세워 위패를 모셨다.
향사 : 방응현이 1589년(선조 22년)에 세상을 떠난 후,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전라북도 남원군 주생면 영천리에 유천서원(楡川書院)이 창건되어 위패가 모셔졌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房應賢, 『沙溪實紀』 1책.
『民族文化大百科辭典』 9‧17‧21.
방응현(房應賢, 1524∼1589)의 자는 준부(俊夫)이고 호는 사계(沙溪)이며,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용성(龍城)에 거주하였다. 그는 1524년(중종 19년)에 아버지 한걸(漢傑)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그가 남긴 자료는 『사계실기(沙溪實記)』 1책이 전한다.
수학 및 교육 : 방응현은 일찍이 남명선생과 이항(李恒)선생의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닦았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과거에 나아가지 않았다. 향리의 사계천(沙溪川) 위에 집을 짓고 일생을 송시(誦詩)와 독서로 자적(自適)하는 가운데 과농(課農), 이포(理圃), 관개(灌漑), 화죽(花竹) 등 농학분야의 생리문제에 관심을 두었으며, 동향의 임란의병장 변사정과 친교가 두터웠다(『國朝人物考』).
서원창건활동 : 방응현은 56세(1579년)에 유림의 공의로 노진(盧禛)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기지방(현 금지면)에 고룡서원(古龍書院)을 세워 위패를 모셨다.
향사 : 방응현이 1589년(선조 22년)에 세상을 떠난 후,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전라북도 남원군 주생면 영천리에 유천서원(楡川書院)이 창건되어 위패가 모셔졌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房應賢, 『沙溪實紀』 1책.
『民族文化大百科辭典』 9‧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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