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70. 이욱(李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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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이욱(李郁, 1556~1593)의 자는 문재(文哉)이고 호는 팔계(八溪)이며,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그는 1556년(명종 11년)에 현감 인건(仁健)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성혼(成渾)의 문인이기도 하다.
급문 : 그는 일찍이 남명선생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천인성명(天人性命)의 설(說)을 배웠다.
벼슬 : 그는 31세(1588년)에 천거로 봉선전 참봉(奉先殿參奉)이 되었고, 돈녕부에 전직하였으며, 35세(1592년)에는 경상도에 있다가 이듬해 분호조좌랑이 되어 가산(嘉山)의 병량보급을 관할하였다.
의병활동 : 이욱은 1592년 왜란을 당하여 의병장으로 진주성에 들어갔는데, 이듬해(1593년)에 성이 함락되자 순절하였고, 후에 호조좌랑에 추증되었다(『德川師友淵源錄』, 卷3, 「門人」).
향사 : 그는 1593(선조 26년)에 세상을 떠난 후 창열사(彰烈祠)에 향사되었다.
□ 참고자료
『宣祖實錄』 26년, 37년.
『光海君日記』 6년.
『司馬榜目』.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民族文化大百科辭典』 18.
이욱(李郁, 1556~1593)의 자는 문재(文哉)이고 호는 팔계(八溪)이며,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그는 1556년(명종 11년)에 현감 인건(仁健)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성혼(成渾)의 문인이기도 하다.
급문 : 그는 일찍이 남명선생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천인성명(天人性命)의 설(說)을 배웠다.
벼슬 : 그는 31세(1588년)에 천거로 봉선전 참봉(奉先殿參奉)이 되었고, 돈녕부에 전직하였으며, 35세(1592년)에는 경상도에 있다가 이듬해 분호조좌랑이 되어 가산(嘉山)의 병량보급을 관할하였다.
의병활동 : 이욱은 1592년 왜란을 당하여 의병장으로 진주성에 들어갔는데, 이듬해(1593년)에 성이 함락되자 순절하였고, 후에 호조좌랑에 추증되었다(『德川師友淵源錄』, 卷3, 「門人」).
향사 : 그는 1593(선조 26년)에 세상을 떠난 후 창열사(彰烈祠)에 향사되었다.
□ 참고자료
『宣祖實錄』 26년, 37년.
『光海君日記』 6년.
『司馬榜目』.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民族文化大百科辭典』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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