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49. 신공필(愼公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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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신공필(愼公弼)의 자는 사훈(士勳)이고 호는 정재(靜齋)이며, 본관은 거창(居昌)으로 진주(晋州)에 거주하였다.
『백곡실기』에 의하면, 그의 선대는 거창 사람이며 진주에 살았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과거문장 공부에 힘썼으나 문장이 일정한 법식에 맞지 않아 끝내 불리하였다. 천성이 활달하고 뛰어나 부귀 영화같은 것으로써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마음이 맑고 높음을 스스로 지켰으며 만년에 남명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선생이 자주 칭찬하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천품이 매우 높고 지식이 통명하여 항상 시와 예를 고집하여 학문이 선비들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되었다. 이런 사람이 있는데도 이름이 바깥에 소문이 나지 않는 것은 이른바 집안에 명사(名士)가 있어도 30년 동안이나 알지 못했다(『栢谷實紀』, 권1, 雜著).
고 하였다. 나이 40여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서동생 무생(戊生)이 힘써 배우고 선(善)을 좋아해 집안 명성을 이을 만했으나 일찍 죽었으니 애석한 일(『栢谷先生實紀』)’이라고 하였다.
벼슬 : 신공필은 선조 때에 참봉을 지냈고, 외물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에는 함흥으로 피난하였다.
향사 :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송도서원(松島書院)에 배향되었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居昌愼氏世譜』.
陳克敬, 『栢谷實紀』.
신공필(愼公弼)의 자는 사훈(士勳)이고 호는 정재(靜齋)이며, 본관은 거창(居昌)으로 진주(晋州)에 거주하였다.
『백곡실기』에 의하면, 그의 선대는 거창 사람이며 진주에 살았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과거문장 공부에 힘썼으나 문장이 일정한 법식에 맞지 않아 끝내 불리하였다. 천성이 활달하고 뛰어나 부귀 영화같은 것으로써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마음이 맑고 높음을 스스로 지켰으며 만년에 남명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선생이 자주 칭찬하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천품이 매우 높고 지식이 통명하여 항상 시와 예를 고집하여 학문이 선비들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되었다. 이런 사람이 있는데도 이름이 바깥에 소문이 나지 않는 것은 이른바 집안에 명사(名士)가 있어도 30년 동안이나 알지 못했다(『栢谷實紀』, 권1, 雜著).
고 하였다. 나이 40여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서동생 무생(戊生)이 힘써 배우고 선(善)을 좋아해 집안 명성을 이을 만했으나 일찍 죽었으니 애석한 일(『栢谷先生實紀』)’이라고 하였다.
벼슬 : 신공필은 선조 때에 참봉을 지냈고, 외물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에는 함흥으로 피난하였다.
향사 :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송도서원(松島書院)에 배향되었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居昌愼氏世譜』.
陳克敬, 『栢谷實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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