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30. 이염(李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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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이염(李琰, 1537~1587)의 자는 옥오(玉吾)이고 호는 운당(雲塘) 또는 안계(安溪)이며, 본관은 고성(固城)이다. 그는 1537년(중종 32년)에 태어나 조동(槽洞)에 거주하였다.
강학 및 벼슬 : 이염은 어려서부터 소학에 힘을 쏟고, 나아가 대학의 성의장에 공을 들였다. 최영경, 하항(河沆) 등과 의리를 강마하였다.
이염은 뒤에 남부(南部)참봉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가 병이 들었을 때 최영경, 유종지, 하응도 등이 문병하였는데, 이르기를, “내가 먼저 죽는 것을 슬퍼 마라. 몇 년 뒤에 내가 먼저 간 것을 부러워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사람들이 그의 선견지명에 탄복하였다고 한다. 강학지 임연정(臨淵亭)이 남아 있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이염(李琰, 1537~1587)의 자는 옥오(玉吾)이고 호는 운당(雲塘) 또는 안계(安溪)이며, 본관은 고성(固城)이다. 그는 1537년(중종 32년)에 태어나 조동(槽洞)에 거주하였다.
강학 및 벼슬 : 이염은 어려서부터 소학에 힘을 쏟고, 나아가 대학의 성의장에 공을 들였다. 최영경, 하항(河沆) 등과 의리를 강마하였다.
이염은 뒤에 남부(南部)참봉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가 병이 들었을 때 최영경, 유종지, 하응도 등이 문병하였는데, 이르기를, “내가 먼저 죽는 것을 슬퍼 마라. 몇 년 뒤에 내가 먼저 간 것을 부러워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사람들이 그의 선견지명에 탄복하였다고 한다. 강학지 임연정(臨淵亭)이 남아 있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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