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39. 조원(趙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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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조원(趙瑗, 1544~1595)의 자는 백옥(伯玉)이고 호는 운강(雲岡)이며, 본관은 임천(林川)으로 금산(琴山)에 거주하였다. 그는 1544년(중종 39년)에 응공(應恭)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후에 응관(應寬)에게 입양되었다. 그는 익(翊)의 손자이자 판서 이준민(李俊民)의 사위이다. 그에 관한 자료는 『가림세고(嘉林世稿)』 2책이 전한다.
급문 : 조원은 일찍이 남명선생을 섬겼는데, 남명선생께서 가사(佳士)로 허여하였다. 남명선생의 제문을 남겼다.
과거 및 벼슬 : 조원은 21세(1564년) 식년 진사에 제1등으로 합격하였고(『司馬榜目』), 29세(1572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조원은 32세(1575년)에 정언이 되어 이 해에 당쟁이 시작되자, 그에 대한 탕평의 계책을 상소하여 당파의 수뇌를 파직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33세(1576년)에는 이조좌랑이 되었고, 50세(1583년)에는 삼척부사로 나갔다가, 1593년(선조 26년)에 승지에 이르렀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또 자손의 교육도 단엄하게 하였다.
□ 참고자료
『顯宗實錄』 3년~4년.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民族文化大百科辭典』 20.
『嘉林世稿』 2책.
조원(趙瑗, 1544~1595)의 자는 백옥(伯玉)이고 호는 운강(雲岡)이며, 본관은 임천(林川)으로 금산(琴山)에 거주하였다. 그는 1544년(중종 39년)에 응공(應恭)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후에 응관(應寬)에게 입양되었다. 그는 익(翊)의 손자이자 판서 이준민(李俊民)의 사위이다. 그에 관한 자료는 『가림세고(嘉林世稿)』 2책이 전한다.
급문 : 조원은 일찍이 남명선생을 섬겼는데, 남명선생께서 가사(佳士)로 허여하였다. 남명선생의 제문을 남겼다.
과거 및 벼슬 : 조원은 21세(1564년) 식년 진사에 제1등으로 합격하였고(『司馬榜目』), 29세(1572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조원은 32세(1575년)에 정언이 되어 이 해에 당쟁이 시작되자, 그에 대한 탕평의 계책을 상소하여 당파의 수뇌를 파직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33세(1576년)에는 이조좌랑이 되었고, 50세(1583년)에는 삼척부사로 나갔다가, 1593년(선조 26년)에 승지에 이르렀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또 자손의 교육도 단엄하게 하였다.
□ 참고자료
『顯宗實錄』 3년~4년.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民族文化大百科辭典』 20.
『嘉林世稿』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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