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20. 정구(鄭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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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정구(鄭構, 1522~?)의 자는 긍보(肯甫)이고 호는 영모암(永慕庵)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그는 1522년(중종 17년)에 태어나서 단성(丹城)에 거주하였다.
급문 : 정구(鄭構)는 어려서부터 남명선생에게 급문하였는데, 시묘살이 때에는 남명선생이 글을 보내어 지나친 효로써 건강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였다.
강학 : 그는 44세(1565년) 겨울에 이광우와 구사재(九思齋)에서 주서(朱書)를 토론하였다(『竹閣集』).
벼슬 : 정구(鄭構)는 효성으로 음성(陰城) 현감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으니, 다시 산음(山陰) 현감에 제수되었다. 이로써 부모를 모시기가 쉬워졌는데,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호랑이가 짐승을 물어주는 등의 이적이 있었고, 여묘살이 때에도 이적이 있으니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집안에 어필(御筆)이 있어 때로 감상할 때에는 반드시 분향 4배를 행하였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정구(鄭構, 1522~?)의 자는 긍보(肯甫)이고 호는 영모암(永慕庵)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그는 1522년(중종 17년)에 태어나서 단성(丹城)에 거주하였다.
급문 : 정구(鄭構)는 어려서부터 남명선생에게 급문하였는데, 시묘살이 때에는 남명선생이 글을 보내어 지나친 효로써 건강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였다.
강학 : 그는 44세(1565년) 겨울에 이광우와 구사재(九思齋)에서 주서(朱書)를 토론하였다(『竹閣集』).
벼슬 : 정구(鄭構)는 효성으로 음성(陰城) 현감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으니, 다시 산음(山陰) 현감에 제수되었다. 이로써 부모를 모시기가 쉬워졌는데,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호랑이가 짐승을 물어주는 등의 이적이 있었고, 여묘살이 때에도 이적이 있으니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집안에 어필(御筆)이 있어 때로 감상할 때에는 반드시 분향 4배를 행하였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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