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133. 조차석(曺次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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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조차석(曺次石, 1552∼1616)의 자는 일회(一會)이고,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그는 1552년(명종 7년)에 남명선생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그의 벼슬은 52세(1603년) 11월 18일에 예안 현감(禮安縣監)에 제수된 것을 비롯하여(『宣祖實錄』, 선조 36년), 신창 및 의령현감을 지냈다. 그는 서리들이 두려워하고, 백성들을 편하게 해 주는 정치를 시행하자 백성으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다. 임기가 끝나서 돌아가려 하자, 백성들이 장계를 올려 더 머물게 해줄 것을 청하였는데, 그 내용에는 “수령이 오심은 왜 이리 늦었으며, 수령이 돌아감은 왜 이리 급한가?(『德川師友淵源錄』, 卷4, 「門人續集」, 曺次石條)”라고 기록되어 있다.
□ 참고자료
『宣祖實錄』 36년.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조차석(曺次石, 1552∼1616)의 자는 일회(一會)이고,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그는 1552년(명종 7년)에 남명선생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그의 벼슬은 52세(1603년) 11월 18일에 예안 현감(禮安縣監)에 제수된 것을 비롯하여(『宣祖實錄』, 선조 36년), 신창 및 의령현감을 지냈다. 그는 서리들이 두려워하고, 백성들을 편하게 해 주는 정치를 시행하자 백성으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다. 임기가 끝나서 돌아가려 하자, 백성들이 장계를 올려 더 머물게 해줄 것을 청하였는데, 그 내용에는 “수령이 오심은 왜 이리 늦었으며, 수령이 돌아감은 왜 이리 급한가?(『德川師友淵源錄』, 卷4, 「門人續集」, 曺次石條)”라고 기록되어 있다.
□ 참고자료
『宣祖實錄』 36년.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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