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문화 11호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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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문화 11호가 발간되었습니다.
이번 호에는 선비정신의 현대적 의미에 대한 글들이 많다. 이동환 교려대학교 명예교수는 시론「선비정신의 유래와 명암」에서 흑백논리적인 구시대의 편협된 선비정신을 타파하고 오늘날에 부합되는 선비정신을 정립해야 한다고 했다. 흑백논리적 사고는 상대를 압복(壓服)하지 못하면 역으로 자기가 죽는다고 생각하는, 전부(全部)냐 전무(全無)냐의 양자택일적 사고로 당파적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고 했다. 선비정신의 현대적 계승이 지향해야 할 바를 잘 지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우용제 교수의 「웰빙의 두 가지 공부」과 진주 대아고등학교 정헌식 선생의 「선비정신과 차생활」은 선비정신의 현대적 모습과 관련된 글이다. 우용제 교수는 잘 살기 위해서는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정헌식 선생은 차의 맑고 담백한 아취와 선비의 고결한 인격이 닮았다고 하며 선비정신이 차생활로 피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두 편의 글은 선비정신과 선비문화가 널리 보급되기 위해서는 실생활의 접목이 중요하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선비문화> 11호에는 선비정신과 남명학과 관련된 글들도 많이 실려 있다. 경북대학교 국문학과 정우락 교수의 남명문학의 현장답사기인 「태허를 머금은 연못」은 남명의 김해시절과 관련된 또 다른 자취를 묘사했다. 경남일보 강동욱 문화부장은 「심재 조긍섭의 남명학 계승」에서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 1873-1933)이 강우 강좌지역의 경계지점인 창녕 달성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강우와 강좌지역의 학문을 계승한 유학자로 소개 했다. 심재는 김창협 등의 남명에 대한 비난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당시에 왜곡된 남명에 대한 평판을 바로잡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하였다. 설석규 한국국학진흥원 연구부장의 「남명문도를 찾아서」는 지금까지 크게 알려지지 않은 회당(悔堂) 신원록(申元錄; 1516~1576)을 소개하고 있다. 회당은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주로 의성에서 활동하였는데, 39세 때 처음 산천재로 남명을 찾은 이래 수차례 왕래하며 인격적인 감화를 받고 남명학의 실천성을 구현하는데 기여했던 인물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경북대학교 한문학과 황위주 교수의 한시강좌인 「초사(楚辭)의 형성과 양식적 특징」, 영산대 행정학부 김인규 교수의 「홍대용(洪大容)의 생애와 사상」, 진주산업대학교 나희라 교수의 「고대 동북아 민족들은 하늘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경상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윤정 박사의 「국왕 영조(英祖), 경복궁 빈터에서 당습(黨習)을 억제하다」 등의 글이 실려 있다.
이번 호에는 선비정신의 현대적 의미에 대한 글들이 많다. 이동환 교려대학교 명예교수는 시론「선비정신의 유래와 명암」에서 흑백논리적인 구시대의 편협된 선비정신을 타파하고 오늘날에 부합되는 선비정신을 정립해야 한다고 했다. 흑백논리적 사고는 상대를 압복(壓服)하지 못하면 역으로 자기가 죽는다고 생각하는, 전부(全部)냐 전무(全無)냐의 양자택일적 사고로 당파적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고 했다. 선비정신의 현대적 계승이 지향해야 할 바를 잘 지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우용제 교수의 「웰빙의 두 가지 공부」과 진주 대아고등학교 정헌식 선생의 「선비정신과 차생활」은 선비정신의 현대적 모습과 관련된 글이다. 우용제 교수는 잘 살기 위해서는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정헌식 선생은 차의 맑고 담백한 아취와 선비의 고결한 인격이 닮았다고 하며 선비정신이 차생활로 피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두 편의 글은 선비정신과 선비문화가 널리 보급되기 위해서는 실생활의 접목이 중요하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선비문화> 11호에는 선비정신과 남명학과 관련된 글들도 많이 실려 있다. 경북대학교 국문학과 정우락 교수의 남명문학의 현장답사기인 「태허를 머금은 연못」은 남명의 김해시절과 관련된 또 다른 자취를 묘사했다. 경남일보 강동욱 문화부장은 「심재 조긍섭의 남명학 계승」에서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 1873-1933)이 강우 강좌지역의 경계지점인 창녕 달성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강우와 강좌지역의 학문을 계승한 유학자로 소개 했다. 심재는 김창협 등의 남명에 대한 비난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당시에 왜곡된 남명에 대한 평판을 바로잡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하였다. 설석규 한국국학진흥원 연구부장의 「남명문도를 찾아서」는 지금까지 크게 알려지지 않은 회당(悔堂) 신원록(申元錄; 1516~1576)을 소개하고 있다. 회당은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주로 의성에서 활동하였는데, 39세 때 처음 산천재로 남명을 찾은 이래 수차례 왕래하며 인격적인 감화를 받고 남명학의 실천성을 구현하는데 기여했던 인물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경북대학교 한문학과 황위주 교수의 한시강좌인 「초사(楚辭)의 형성과 양식적 특징」, 영산대 행정학부 김인규 교수의 「홍대용(洪大容)의 생애와 사상」, 진주산업대학교 나희라 교수의 「고대 동북아 민족들은 하늘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경상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윤정 박사의 「국왕 영조(英祖), 경복궁 빈터에서 당습(黨習)을 억제하다」 등의 글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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