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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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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뇌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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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885회 작성일 03-11-0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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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 있다. 이곳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이 48세(1548년)때부터 61세(1561년)까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장소이다. 48세 되던 해 김해에서 이곳 토동(兎洞)으로 돌아온 선생은 뇌룡사(雷龍舍)를 지어 사방에서 모여든 제자들을 가르쳤다. 뇌룡은 장자(莊子)의 연묵이뢰성 시거이용현(淵?而 雷聲 尸居而 龍見) 깊은 연못처럼 묵묵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우뢰처럼 세상을 울리고, 시동(尸童)처럼 가만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용처럼 신묘한 조화를 드러낸다는 말에서 따왔다.
또한 시내건너 산기슭에 계부당(鷄伏堂 : 닭이 알을 품는다는 뜻)을 지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있고, 근처 절벽에는 선생이 노닐던 곳인 영파대(暎波臺)가 있었다고 한다. 선생은 이론위주의 성리설(性理說)을 전개하기보다는 경의(敬義)에 바탕을 둔 실천위주의 학문을 중시하였다.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나라를 구제한 수많은 인물이 선생의 제자였던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선생의 높은 학덕이 조정에 알려져 여러차례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특히 당시의 정치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일명 단성소(丹城疏)"를 지어 올린 곳도 바로 이곳이다.
선생은 61세 때까지 이곳에서 지낸 뒤 덕산(德山)으로 옮겨갔다. 뇌룡사(雷龍舍)는 정유재란 때 소실된 뒤 복원되지 못한 듯하다. 그 뒤 1678년에 합천군 봉산면 계산(界山)에 있었던 용암서원(龍巖書院)의 부속건물인 뇌룡정(雷龍亭)으로 재건되었고 1758년과 1831년에 중건 되었는데 1868년 서원훼철령에 의해 용암서원과 함께 훼철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조희규(曺禧奎)의 발의에 따라 현감 신두선(申斗善)의 협조로 1883년에 허유(許愈) 정재구(鄭載圭) 등 삼가(三嘉)유림들이 원래의 자리에 중건한 것이다. 전체건물 배치는 선생이 지은 "신명사도(神明舍圖)"의 모양을 본떴다고 한다. 지금도 유림들이 매년 음력3월 상정일(上丁日)에 채례(菜禮)를 거행하면서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고 있다.
경남 문화재 자료 제129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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