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신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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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 대동면 주동리 원동부락 산자락에 있으며, 1985년 1월 4일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됐다.
이곳은 중종 때 선생이 세운 정자로 후학을 가르친 곳이다. 남명선생을 기리기 위해 선조 21년(1588) 향인들의 청에 의하여 김해부사 양사준이 이 정자의 동쪽에 서원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중단되었다가, 광해군 원년(1609) 안희·허경윤 등의 힘으로 준공되고 신사서원(新山書院)이라 사액되었다. 김해부의 유일한 사액서원(임금이 내린 이름)이었으나 고종 8년(1871) 서원철폐정책에 따라 훼철되고 말았다.
산해정은 순조 20년(1820) 송윤증 등이 중건하였으며 해방 후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팔작지붕의 목조와가로서 정면 5간 측면 2간의 집이다. 1999년 김해시에서 신산서원을 복원하였다.
산해정의 뒷산은 선생의 아들 차산을 묻었다고 조차산이라 부르고, 그 아래 오미등에는 정경부인 남평 조씨의 묘가 있다
이곳은 중종 때 선생이 세운 정자로 후학을 가르친 곳이다. 남명선생을 기리기 위해 선조 21년(1588) 향인들의 청에 의하여 김해부사 양사준이 이 정자의 동쪽에 서원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중단되었다가, 광해군 원년(1609) 안희·허경윤 등의 힘으로 준공되고 신사서원(新山書院)이라 사액되었다. 김해부의 유일한 사액서원(임금이 내린 이름)이었으나 고종 8년(1871) 서원철폐정책에 따라 훼철되고 말았다.
산해정은 순조 20년(1820) 송윤증 등이 중건하였으며 해방 후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팔작지붕의 목조와가로서 정면 5간 측면 2간의 집이다. 1999년 김해시에서 신산서원을 복원하였다.
산해정의 뒷산은 선생의 아들 차산을 묻었다고 조차산이라 부르고, 그 아래 오미등에는 정경부인 남평 조씨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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