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교육지원청, 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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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교육지원청, 대사지
대사지[ 大寺池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 일대에 있던 연못.
명칭유래
『삼국유사』에 따르면, 대사지는 신라 혜공왕 2년(766)에 강주 관서(진주성)의 대사(大寺)라는 절이 있던 곳의 동쪽 땅이 점점 꺼져 연못이 생겼다고 한다. 그 연못의 크기는 세로가 13척이고 가로가 7척이었는데 난데없이 잉어 5~6마리가 생겨나 점점 커지면서 연못도 따라 커졌다고 한다.
변천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의 외곽에 있던 대사지는 진주성 방어를 위한 해자(垓字)의 역할을 하여 1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승리하였으나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왜군이 부분적으로 대사지를 매립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5~1936년 일본인 읍장인 야마시다에 의해 매립되어 진주 제1보통학교(지금의 진주초등학교)와 진주경찰서가 세워져,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사지 [大寺池]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대사지[ 大寺池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 일대에 있던 연못.
명칭유래
『삼국유사』에 따르면, 대사지는 신라 혜공왕 2년(766)에 강주 관서(진주성)의 대사(大寺)라는 절이 있던 곳의 동쪽 땅이 점점 꺼져 연못이 생겼다고 한다. 그 연못의 크기는 세로가 13척이고 가로가 7척이었는데 난데없이 잉어 5~6마리가 생겨나 점점 커지면서 연못도 따라 커졌다고 한다.
변천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의 외곽에 있던 대사지는 진주성 방어를 위한 해자(垓字)의 역할을 하여 1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승리하였으나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왜군이 부분적으로 대사지를 매립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5~1936년 일본인 읍장인 야마시다에 의해 매립되어 진주 제1보통학교(지금의 진주초등학교)와 진주경찰서가 세워져,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사지 [大寺池]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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