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글터◆
領相 來庵後孫
薄博士 鄭琪哲 先生漫評
鄭 鉉 澤
(晋陽人·본원 이사)
합천땅 가야 산골에 寓居아닌 憂居하시면서 스스로 萬古(?)를 吐하시는 정기철선생은 1930년 庚午生으로 나보다 12年上이시고, 내암 鄭仁弘 대감의 後孫으로서 일찍이 서울에서 大學을 마치고 實業界에서 착실히 富를 축적하여 일가 친척 중에서 유망한 後進의 奬學事業과 崇祖 사업에 많은 財와 氣와 學的 硏鑽을 쏟았다. 내암선생께서 仁祖反正으로 伏刑되신 후 요요히 370여 년의 세월이 흘렀기에 그간 先生의 幽宅이나 遺物, 樓亭 存文 等의 관리나 굴절된 先生의 違業을 바로잡아 홍보하고, 아득한 세월의 무게와 몰지각한 毁言, 喧擾를 즐기는 붕당 패거리들에 맞서 孤孤히 萬卷書冊을 섭렵하고, 正論으로써 都下의 史家나 論客을 驚動케 한 숨은 鄕土史學者이며, 來庵先生 硏究 第一人者이다.
그런데 瑞山人 鄭璂哲先生과 나와는 1970年 初부터 親交라 하기는 좀 거북스럽고 형님같이 모시면서 土·日요일이면 景勝이나 史蹟地를 같이 탐방하고 즐기면서 南冥學 특히 來庵硏究나 龍蛇之亂 中의 義兵史 연구에 무식한 내가 그저 부창부수 고개만 끄떡 끄떡 따라해 주고 매양 맛있는 안주와 향기 좋은 술만 뜯어먹는 그런 버릇없는 동생으로 二十有九年을 곁에서 모시고 온 처지인지라, 때로는 그 해박한 壬辰戰史, 日本語 실력, 純一하고 假飾없고 인정미 넘치는 鄭公(정기철氏)의 引하고 誘하는 風度에 내가 순순히 잘도 따라주지만 때로는 그 柔順한 양반의 逆鱗을 (일부러) 건드려 노기탱천하게 만들고는 그것을 解消하느라 또 다시 一配酒席을 마련하고 포식하는 등 좋은 의미로 '올렸다 내렸다' '웃기다 울리다' 하는 고약한 동생으로 言行을 做해왔다.
가."영상(領相)후손이 우째(어찌)그렇소?" "그럼 그 벼슬 니 해라, 영상후손 뭣-됐다"
지난 癸酉年(1993) 淸秋 某日 土요일에 예의 그 山野 탐방 별난 습벽이 발동해서 주말 歸家上京은 烏有하고 영상 후손 정기철 公을 충동질한다.
"정선생님 뭐 하시오?", "응, 뭐 글 좀 쓰는데 무엇이 잘 안 맞어! 그거, 저, 아무개가 쓴 글 보이(보니) 전부 거짓말이고 세상이 그 말이 맞다고 官에서도 그 양반 글을 인용했으니!", "鄭先生任 文博이 戊申靖亂 관계史科 때문에 서부 경남 같이 가자고 카는대(하는데) 정선생님이 안내해 주셔야 될긴대(될 것인데)", "응- 바쁜데, 문교수 부탁인데 할 수 없지 뭐!", "정선생님 오늘 저녁 자고서 내일 저녁 늦게사 올긴대(돌아올 것인데) 잠은 진주서 자고 밥은 진주 ○○가 잘하고 고령 ○○집 편육이 좋고, 술은 묘산(합천) 탁주가 좋다던대요!", "또 그 소리다 알았다." 문교수(경북大 문경현박사) 同行 云云은 사실 거짓말이고 정선생을 먼저 動해서 作心시켜 놓고서는 文博에게는 事後에 請約을 해도 원래 國史 碩學이라 쾌히 동참하시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되면 매양 車편은 내가 가져가므로(기사도 딸렸고 기름 걱정은 안해도 되는 職場인지라) 文博士, 鄭先生, 그리고 나, 또 기사님 이렇게 四人이 一路 우선 古都 晋陽城址를 向하는데, 그 實은 鄭先生이 무슨 또 희귀하고 별난 史科와 '돈'을 얼마 쯤 秘藏했는지 빨리 정탐을 해야 그 돈의 量에 걸맞게 宿所와 美酒佳肴를 짜 맞추어서 기사에게 내가 行處명령(order)을 내려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슬슬 작전이 개시된다. 내가 먼저 수작을 거는데 "文교수님 저기 저 大쒼풍� 江岸의 무계(武溪)가 바로 내암선생의 첫 전승 古戰場 아니요?", "아! 그렇지요 참으로 우리 嶺右에서야 我朝 五百年에 그 어른 당할 者 없지요. 글로 보나 기개를 보나. 당시의 戰況을 간파하는 戰略을 봐서도요 ……."하고 文博士가 받아친다. 이쯤되면 정선생 입가에 스르르 미소가 번진다. "응 - 조상은 훌륭한데 우리 후손이 못나서 …….", "아 ― 무슨 겸손의 말씀을요!"하고 文博이 맞장구를 치면 그 때다 싶어 나는 약삭빠르게 끼어 들어 "정선생님 오늘 날씨도 좋고 차도 안 막히니 저 고령 편육점에서 해갈이나 좀 ―하고 가는 게 좋은데, 옛말에 不恐總總不盡說이라 했지 않소?”그리되면 원래 조상명예에 민감한 성품이라 아래바지 호주머니에 손이 슬며시 들어가고 지폐를 만지작 거리기 시작한다 아마 예산을 짜는 모양이리라. 대충 그쯤되면 이 어른 지참금이 幾十萬원(?)쯤 장만했는지 통박을 얼른잰다.
원래 정선생님은 食飮의 度量이 적어서 술이나 안주를 별로 잡숫지 못하고, 게다가 역사비평에 시간을 다 쏟으니 언제 술 마실 시간도 부족한 데다가 반 잔만 마셔도 조선술을 다 마신양 얼굴이 붉어지는 체질이다.
이렇게 해서 文博께서 曰 준엄하게 "어째 영상 그것도 보통영상인가, 영상후손이 반 잔 술에 그렇게 얼굴이 紅溺되서야 되겠소. 江右 第一甲族의 후손답게 만 잔 술을 기울여도 결코 어지럽지 아니하고 ……. 子曰 唯酒無量이나 不及亂이시더라 그것도 모르오? 영상후손이 되가지고요?" 내가 또 거든다. "우리 할배(할아버지)가 만약 영상 벼슬을 했다면 오늘 이 자리 그만 風樂을 잡고 한 번 벌리겠는데!", "암. 영상 핏줄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는기라. 정선생의 행동거지를 보면 萬世君子이니 ……" 이쯤되면 연거푸 술안주가 계속 상 위로 대령하게 되고, 영상을 조상으로 둔 죄로(?) 정선생의 호주머니 '쇠'가 제일 먼저 거들나게 된다. 이 때 이후부터 정선생에 대하여 譽毁를 막론하고 잘해도 "영상 후손이 되가지고 …….", 못해도 "어찌 영상후손이 되가지고 그것도 못해서야” 이런식으로 그 점잖은 양반을 놀리게 되었다. 그럴 적이면 정선생은 반 잔 술이나 들어가면 "영상벼슬 니 그만 가져 가거라. 영상후손 뭐 됐다.”
나. 鄭薄(博)博士 琪哲先生
내가 生業 관계로 大丘에 머무른 6年여 한데 자주 밤이나 주중의 休日이 드는 때면 내당동 나의 宿所, 號하여 '含光軒'이란 편액을 주제넘게 아파트 문에 달고는 그 당시 市內의 소장교수들의 學會, 즉 朝鮮史硏究會의 金某, 薛某, 具, 權, 崔 … 等 대단한 교수예비생 박사님들의 행차가 자주 있었다. 안동소주를 쉽게 入手常備하여 獨身으로 客愁를 삭히는 약으로 쓰는데 이들이 오면 그 독한 술이 2∼3병쯤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이리하여 취흥이 오르면 某氏는 漢武帝 秋風辭, 某氏는 孔明의 出師表를 朗誦하는데, 그런 자리에는 꼭 내가 서둘러 영상후손 정기철 선생을 座首로 뫼신다. 정선생은 못 잡숫는 주량에 얼굴이 붉어오면, 예의 십팔번 노래 고죠노 스끼(荒城の月)를 흥얼거리다가는 "어이 鄭兄(날더러 그렇게 부를 때도 있었다.) 그 풍금 한 번 짚어봐라.","예 그러지요." 원래 다키 켄타로(潼廉太郞)의 이 曲은 C短調로 첫 音이 '라'인데 내가 음반을 짚어 정선생의 聲調의 음계를 '라'에 맞추도록 한다. 헌데 반잔술에 오르간의 '라'음계와 정선생 목청소리 '라'음이 一致가 안 된다. 그래서 내가 먼저 先唱하고 곧 따라 할 지경이면 영 곡조가 안맞고 장단도 제멋대로인 데다가 어쩐지 애조띤 유행가 가락 같아서 내가 제창을 하다가 멈추고는 말하기를 "영상후손이 어째 이 쉬운 왜놈 노래가락 하나 못 맞추요 그놈의 영상벼슬 △나 주어버리지!","응 그려 영상후손 △됐다.", "허허 ……." 박장대소가 터진다.
어느 땐가 그 자리에 있던 모 소장 박사가 조선중기의 사림사상과 임란관계 논리를 稽古해 가면서 한참 설파해 가는데 ……, 한참 듣고 있는 鄭公께서 그 是非曲直을 하나 하나 검증을 하면서 반론을 펴는데 座中의 才士가 누구 하나 有口無言, 可타 否타 爭論을 못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우리 정선생 내암후손을 평소 정박사(학위증 없는)라 호칭했는데 이제부터는 여러분 박사의 선생이니 박사의 박사 즉 博博士라 부를까 하오니 諸賢의 意向은 如何乎?"滿座가 일제히 "아 우리 모두 鄭公의 그 曠漠深大한 學的 蘊蓄과 沈潛한 人品을 足히 아는 처지니 정박박사라 부릅시다."이런 연고로 정박박사가 公認되었는데. 또 어떤 자리인지. 아마 지금 대진大의 權박사와 釜山의 韓박사가 우리 아파트에 같이 모여 조촐한 酒宴이 있던 그런 계제에 술과 안주가 떨어지고 盃盤이 낭자하여, 점잖은 체신에 酒肆로 가서 美姬를 伴할 수 없으매 인근 청요리집에 주문을 했것다. 그런차에 두 분 빈객은 學者라 호주머니 사정은 알만하고, 맨맨하고 사람좋은 정선생이 조상 잘못둔(?) 죄로 매양 주머니를 털리는데 그날 따라 비상의 준비금을 깜박했는지 在庫가 바닥나서 만부득 主人인 내가 數萬金을 희사하고는 말하기를, "이제부터 鄭博의 넓은 博字는 엷은 薄字 鄭薄博士라 改稱하노니 …… 취중 多言이 眞君子라 했거늘." 鄭公이 대답하기를, "제기랄 박박사고 No박사고 간에 영상후손 △됐다."
다. 痛哭來庵祖, 今日逢故人
어느 해이든가 甲戌(1994)年 이든가(?) 아마 麥秋의 榴夏之際이었으리라. 날씨도 野遊하기 알맞고 해서 內子의 간곡한 歸家請은 금새 까맣게 잊어먹고는 鄭公 琪哲氏와 釜山의 韓博士(한상규)를 부추기고 유혹해서 함양 上下林과 용추계곡의 답족놀이를 一泊二日 計劃으로 떠났다. 天嶺과 厚한 風松를 두루 玩賞하고 거창 위천골 강동(薑洞)의 桐溪 鄭蘊先生 宗宅을 찾아가기로 했다. 마침 일요일 늦은 오후라 골이 깊어 덕유산 산그늘이 뉘여 뉘여 번져오는 그런 한적한 여름철 山村이었다. 이미 安陰인가에서 맑은 玉露水로 빚은 農酒로 취기가 풍기는 그런 무례한 모습으로 古宅을 예방(?)하여 通姓名을 하니 안방마님이 반가히 정침으로 인도하기에 그저 3人이 들어갔다. 사실은 옛날 서책이나 유품이나 있으면 한 번 구경하고 쉬히 돌아올 심산이었다.
宗孫인 점잖은 어른을 배알하니 함자(銜字)가 정우성님이시고 동계의 10대손(?)이라 하시든가? 아무튼 기억이 몽롱한데 내가 화두를 꺼내 찾아온 내력을 곡진히 말씀드리니 그 분 이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他日에 한걸음 하시면 보잘 것 없으나 친람토록 하리다"하고 다과상에 합천교육장을 지낸 그 분과 閑談을 나누는데, 묵묵히 앉아 계시던 鄭公 기철선생께서 그만 돌연히 정우영 동계후손의 목을 안고 大聲痛哭을 하신다. "우리 來庵祖의 屍身을 수렴해서 千里길을 운구해 오신 동계선생의 은공을 생각하니 …… 이 못난 후손이 백골난망이오 …… 늦게사 후손을 찾으니 자손된 도리가 不孝 中에도 大不孝니 …… 우리 當時를 잊지 말고 世代之交로 친하게 지냅시다 ……." 체면이고 뭐고 팽게치고 닭똥같은 눈물로 엉엉우니 …… 一行인 우리보다 동계 후손 우성氏가 오히려 더 민망할 지경이었다. 아마 정공 기철선생의 先親喪에도 그렇게 슬피 울었을까? 그래서 韓박사와 내가 겨우 진정시키고 계속 그 자리에 죽쳐 머무르기가 계면쩍어 하직인사를 하고는 총총 빠져 나왔다 山谷의 그림자는 짙게 귀로를 덮었다. 昨醉에 또 낮술을 더 했으니 나 역시 興盡悲來로 壬亂과 仁祖反正을 겪으며 中祖의 受難을 追遠해서 悲感함을 이길 수 없어, 서산 정공 기철씨와 나 진양 정가 晋山이 先唱后答調로 귀로 車中에서 염치 없이 호곡하니 슬픈기색이 차 속을 무겁게 누른 채 88고속도로 밤길을 달렸다. 내가 흐느껴 가로되 그 때(1623, 癸亥年) 그 할배가 비석을 갈고(마모) 야간도주만 안했더라도 오늘날 우리 家勢가 이렇게는 안 망했을 것인데 ……. 自稱 不肖孫의 알맹이(Core) 없는 넋두리 Monodrama였다. 이리해서 무골호인, 매양 말안주감으로 화제를 풍만케 했던 내암 후손의 落淚를 처음 보게 되었다. 그 훗날 한참 뒤 晋陽城 一隅 某 Hotel에서 송암 김면 후손과의 一大訟爭이 일어나 양같이 어진 양반이 사자 같은 포효로 자기 來庵祖를 옹위하는 모습을 보고는 역시 영상의 피와 기백은 百代를 흐르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 己卯 春3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