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南冥淵源을 찾아서 (12)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
宋 準 湜
진주전문대 교수
성여신(成汝信, 1546∼1632)의 자는 공실(公實)이고, 호는 부사(浮査)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고조인 우(祐)이후로 진주(晋州)에서 살았다. 증조는 안중(安重)이며, 조부는 일휴(日休)이며, 부친은 두년(斗年)이니, 모두 문학과 효행으로 유명하다. 모친은 초계변씨(草溪卞氏)이니 충순위 원종(元宗)의 따님이다. 그는 1546년 정월 초하루 자시(子時)에 진주(晋州) 구동(龜洞)의 무심정(無心亭)에서 태어났다.
부사는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나고 외모가 빼어나, 그의 조부는“이 아이가 반드시
우리 가문을 크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8세 때 이모부 조계 신점(槽溪
申霑)에게 나아가 처음 수학 하였는데 14세 경에는 경서(經書)와
외전(外傳)에 통하여 과문(科文)의 각체에 능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신동이라고
칭찬하였다. 다시 15세 때 약포 정탁(樂圃 鄭琢)이 진주의 교수로 있을 때 가서
상서(尙書)를 배웠으며, 18세 때에는 구암 이정(龜巖 李禎)에게 나아가 배웠다. 이때
이정은 근사록(近思錄)을 주면서 위기지학(爲己之學)에 힘쓰게 하였다.
23세 때(1568년, 무진) 비로소 남명선생을 배알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대하여 순암 안정복(順庵 安鼎福)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일찍이 단속사(斷俗寺)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승(僧) 휴정(休靜)이 《삼가귀감(三家龜監)》을 찬술하면서 유가(儒家)를 마지막에 두어 간행하고 또 불상을 조성하여 사천왕(四天王)이라고 일컬었으니, 형상이 매우 괴이하였다. 공은 그 책의 차례가 맞지 않은 데 분개하여 승려들에게 명하여 그 책판을 불사르고 불상을 헐도록 하였다. 남명 선생이 이 소식을 듣고 “후배들이 적당히 안주하기에 힘쓰고 진취함을 보지 못하겠더니, 공자께서 광간(狂簡)한 사람을 취하려 했던 것이 바로 이런 까닭이었다.”라고 했는데, 이때의 공의 나이는 23세였다. (順庵先生文集 卷21 成均進士浮査成公墓碣銘)
이후 그는 남명선생 사후 선생을 현양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게되니, 31세 때(1576년, 병자) 수우당 최영경(守愚堂 崔永慶), 각재 하항(覺齋 河沆) 등과 더불어 덕천서원의 건립에 적극 참여하였고, 56세 때(1601년, 신축)에는 병화로 소실된 덕천서원의 중건과 수우당 최영경의 배향에도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茅村集)
부사의 학문은 남명(南冥)과 구암(龜巖) 두 선생의 학문을 종합하여 자신의 학문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부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처음 龜巖 李先生에게 배울 때에 선생이 가르치길 '孝悌忠信으로써 하여 반드시 마음에 구하라'고 하여 학문을 함에 마음으로 講磨하였고 南冥 曺先生에게 배울 때에는 敬義 두 字를 얻어 들었으나 나이가 어려서 두 선생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이미 늙었음인지 때로 고요한 밤에 생각해 본즉 두 선생의 가르친 뜻이 비록 이름은 달리했으나, 그 실상은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다. 孝悌忠信이 敬義가 아니면 행할 수 없고 敬義가 孝悌忠信이 아니면 설 수가 없으며 日用行事間에 내 마음에 당연한 바일 따름이다. 어찌 가히 듣기를 넓게 흡족히 하는 것으로 될까. 두 선생의 사람 가르치는 뜻이 지극하고 다 하였으니 능히 일찌기 스스로 체험하여 마음에 얻지 못하고 지금 방황하면서 궁한 사람이 돌아갈 바가 없는 듯하다.(浮査集, 卷6, 枕上斷篇)
부사는 이들로부터 경의(敬義)와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배워 이를 종신토록 가슴에 새겨, 스스로 다스리고 남을 가르침에 반드시 이를 근본으로 삼았다.
또한 부사는 널리 경전(經傳)을 연구하고 또 제자백가(諸子百家)에도 널리 통했는데 이는 그가 지향한 실천적 학문을 위한 방편이라 할 수 있으니, 그는 '선비의 포부는 지극히 크니 우주간에 많은 일을 알지 못함이 없을 것이로되, 셈하는 법, 진치는 법, 의약, 천문, 지리 등도 모두 다 연구해야 하지만 배운 바의 힘이 서지 않고서 마음을 오로지 이에 두면 뜻만 거칠어지고 과업을 온전히 못하여, 재주는 있으되 덕이 없다'.(浮査集 卷8 言行錄)라고 하여 그의 학문관을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학문관은 임진란 이후에 쓰러져가는 향풍(鄕風)을 진작시키고자 향약(鄕約)인 금산동약(琴山洞約)을 시행한 것이나, 자신의 거주지인 지주지역의 읍지(邑誌)인 진양지(晋陽誌)를 편찬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는데 이는 그의 학문이 가진 실천적 경향성을 보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예는 그의 과거관(科擧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으니, '고을에서 인재를 천거하거나 뽑는 법이 없어지고 후세에 와서 오직 과목(科目)으로 사람을 취하니, 명경과(明經科)에 응시하는 자는 오로지 한 갓 입으로 외는 것만 힘써서 능히 체득한 바가 없고 제술과(製述科)에 응시하는 자는 오로지 아름답고 화려한 글을 짓는 데만 힘써서 나라를 다스리는 원대한 뜻은 모르니 경박하고 부비(浮靡)한 무리들이 조정에 나아가 임금의 덕을 가리고 조정이 바로 서지 못하게 되어 백성이 불안해 한다'(上同)고도 하였다.
한편, 부사는 62세 때 직(直)·방(方)·대(大)에 대한 삼자해(三字解)를 지었는데 이 삼자(三字)를 그는 평생 동안 지킬 수양덕목(修養德目)으로 삼아 그가 거처하던 부사정(浮査亭) 북쪽 창문 벽 위에 크게 써서 붙였다. 이 삼자해는 부사의 위학관(爲學觀)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直이라고 하는가? '마음이 곧을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왜 方이라 하는가? '일이 方正한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왜 大라고 하는가? '局量이 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에 이를 풀이하면, 마음이 곧지 않으면 사특하게 되고 일이 方正하지 않으면 굽게 되고 局量이 크지 않으면 좁고 막힌다. 사특하고 굽고 막힘을 군자는 하지 않는 것이다. 곧은 것의 功은 敬에 있고, 方正한 것의 功은 義에 있고, 큰 것의 功은 誠에 있다. 하나에 집중하여 다른 데 가지 않으면 곧 敬은 마음의 주인이요, 헤아려 마름하기를 알맞게 하고 마땅하게 하면 곧 義는 일의 주인이요, 眞實해서 망령되지 않으면 곧 大는 몸의 주인이다. 마음에 주인이 있고 일에 주인이 있고 몸에 주인이 있으면 곧 길을 가는 발걸음이 좁은 길이거나 굽은 길을 걸어도 군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를 써서 스스로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浮査集 卷5 雜著)
이는 남명선생의 경의(敬義)를 그대로 이어 받은 것으로서 그의 사상과 학문의 바탕은 경(敬)과 의(義)와 성(誠)에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과업(科業)을 그만두지 말라는 부친의 유지에 따라 전후로 24회에 걸쳐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64세인 기유년(1609, 광해군 1)에 비로소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서도,
세도가 혼란함을 보고 대과(大科)를 포기하고 향리(鄕里)에 은둔하였다. 그리하여
사는 곳 강산의 승치(勝致)가 있는 자리에 일찍이 부사정(浮査亭)을 짓고 자호를
부사야로(浮査野老)라고 하였다. 그리고 계서회(黍會)를 만들어 뜻을 같이 하는 벗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모여 닭을 잡고 밥을 지어 대접하기로 약속하고 번갈아 돌아가며
방문하여 술을 마시고 시를 읊조리는 한편 혹 나막신을 신고 산에 오르기도 하고
혹 거룻배를 타고 강에 노닐면서 즐겁게 지냈다. 한편 임진왜란 이후 풍속이 투박하여
선비가 학문을 알지 못하였다. 공은 개연히 이를 진작할 생각으로 사는 마을 금산(琴山)에서
남전여씨(藍田呂氏)의 향약(鄕約)과 퇴계(退溪)의 동약(洞約)을 본떠서 시행하고,
『소학』과 『대학』의 규범을 본받아 양몽재(養蒙齋)와 지학재(志學齋)를 설립하여
고을의 자제들을 모아 가르쳤고, 또 남명이 제정한 혼례와 상례를 회복함으로써 지역의
문풍진작(文風振作)과 예교흥기(禮敎興起)에 크게 기여하였다.
부사는 87세 때(1632년, 임신) 봄에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으면서도 침상단편(枕上短篇)이나 동방제현찬(東方諸賢贊)을 짖기도 하였으나 그해 11월 초하루에 부사정 양직당(養直堂)에서 세상을 떠났다. 후에 사림이 부사를 추모하여 임천사(臨川祠)에 제향하였다.
순암 안정복은 부사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공은 풍채가 빼어나고 도량이 넓어 평소에 빠른 말이나 급한 안색이 없었고 집안에서는 노하여 꾸짖는 일이 없었지만 가정이 절로 엄숙하였다. 인륜에 돈독하여 부모를 섬기기에 그 효성을 다하고 백씨와 중씨를 섬기기에 그 공경을 다하였다. 날마다 일어나면 반드시 의관을 갖추고 가묘에 배알한 뒤 서실에 물러나 손을 맞잡고 꿇어앉아 종일 책을 보았는데 마치 사람이 없는 듯이 고요하였다.
공의 시문은 호건(豪健)하면서 이치(理致)가 있었고 필법은 굳센 기운이 있었으며 성리(性理)의 뜻에 더욱 깊은 조예가 있었으나 스스로 자신의 광채를 감추기에 힘쓰고 일찍이 남에게 과시하여 자랑하지 않았다.
함께 교유한 사람들은 모두 일시의 명류였는데 금란(金蘭)의 교분이 시종 변하지 않았다. 교유한 이들 가운데 억울하게 환란을 당한 사람을 보면 마치 자신의 문제처럼 마음 아프게 생각했는데, 의장(義將) 김덕령(金德齡)이 무고를 당하고 수우(守愚) 최영경(崔永慶)의 원통한 죽음과 동계(桐溪) 정온(鄭蘊)이 죄를 얻음에 있어서 모두 상소하여 진상을 밝히기에 힘써 혹 성사되기도 하고 혹 성사되지 않기도 했으니 의를 행하기에 용감하기가 이와 같았다.
사람을 접할 때는 모난 성격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현사(賢邪)의 구분에는 엄하였다.(順庵先生文集 卷21 成均進士浮査成公墓碣銘)
부인은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니 만호 사신(士信)의 따님인데 부사보다 6년 먼저 돌아가셨다. 진주의 북쪽 송곡(松谷)에 안장하였다. 자녀는 5남 2녀를 두었다.
부사의 저술은 매우 많았으나 화재를 만나 모두 타버리고 전해진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에 대한 자료로서 문집인《부사선생문집(浮査先生文集』》이 있는데, 이는 그의 현손(玄孫) 처회(處會)가 모집한 시문(詩文)에 그의 아들 대적(大勣)이 자신이 찬(撰)한 연보를 합하여 편차(編次)한 정고본(定稿本)을 육대손 동익(東益)·칠대손 사렴(師濂) 등이 안정복(安鼎福)의 서문을 받고 그의 교정(校正)을 거쳐 목판으로 1775년 초간(初刊)한 것이다. 이를 1990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영인하여 《韓國文集叢刊 56》에 실었으며, 1994년 진주의 부사정에서 이를 번역 출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