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원보25호-자유기고

전국 독서경시대회에서 남명 관련 독서감상문 《내 마음의 해와 달》이란 제목으로 진주 신안초등학교 유다은 학생 초등부 은상 수상

사단법인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주최하고,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육방송공사(EBS)에서 후원한 제2회 전국독서경시대회에서 진주 신안초등학교 학생 초등부 3명이 은상, 동상 및 입선을 차지하였다. 여기에 은상을 수상한 작품을 게재한다.

이른 아침부터 온 가족이 분주하다. 아버지께서는 차돌이를 점검하시고, 어머니께서는 도시락을 준비하시고 내 몫은 동생 돌보고. 바쁘다. 바빠!

손꼽아 기다리던 이번 여름 나들이는 나에게 좀 특별하다. 왜냐하면 바로 오늘이 요즘 내가 푹 빠져 어쩔 줄 모르는 남명 조식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설레임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제 겨우 돌이 지난 내 동생도 무엇을 아는지 생글생글 방글방글…….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빠졌다고 약간 삐치신 우리 아빠께서 빵빵 출발 신호를 울리셨다.

차창밖에는 여름이 한창이었다. 두류산은 벌써 짙은 초록물로 목욕을 마치고 나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시원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계곡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송사리 잡기에 정신이 없었다. 내 가슴 속 방망이지리 소리가 쿵쿵 커지고, 엉덩이는 이미 의자에서 떨어져 들썩거렸다. 온 가족이 이 신나는 여름 친구를 안고 도착한 곳은 산천재.

상상과는 다르게 소박하고 오래된 기와집 한 채.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곧 책에서 본 선생님의 청렴결백한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한 치장도 없고, 대갓집 같은 높은 담과 멋진 문도 없는 집. 그렇지만 시골 할머니 댁에 온 것처럼 포근함이 있고 어머니 품처럼 편안함도 있는 것이었다. 가만히 둘러보니 정원에는 향긋한 흙냄새가 피어나고 지붕에는 나이를 알 수 없는 기와 사이로 이름 모를 풀꽃이 피어 있었다. 자그마한 마루에는 선생님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잘 왔다고 말씀해 주시는 듯했다.

어려워서 잘 알 수 없는 조식 선생님의 한시를 부모님께 부탁해 들어보고 선생님의 묘소와 제자들을 가르치셨던 덕천서원을 둘러보고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조용하고 자연과 너무 잘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 곳. 나는 그곳에 계시는 나의 사랑을 꼭꼭 가슴에 담아 가지고 왔다.

그 후 나는 조식 선생님을 뵙고 싶어 도서관으로, 서점으로 뛰어다녔다. 그렇지만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인지 어른들을 위한 책들은 잔뜩 나와 있었지만 우리 어린이들을 위한 선생님의 책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서점에서 권해주는 몇 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친구 사전의 도움을 받아보고 부모님의 설명도 들었지만 선생님을 적은 책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던 나에게 아주 큰 행운이 왔다. 내가 그토록 알고 싶고 보고 싶었던 우리들을 위한 조식 선생님의 책이 나온 것이었다.

동화처럼 예쁜 제목이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해와 달을 비유하니 깊고 큰 뜻이 베어 있을 것 같았다. 책장을 넘기면서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앞에서 본 책들은 어려운 낱말과 잘 알지 못하는 역사적인 내용이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은 마치 요술 주머니처럼 선생님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 하나씩 나에게 꺼내 주었다. 나는 맛있는 꿀단지에 빠지듯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선생님의 소중한 가르침을 하나 하나 배워갔다.

조식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이제 말을 배울 여섯 살 때 벌써 중국의 어려운 고서를 모두 다 익히셨다니 분명 천재이셨다. 하지만 성성자와 칼의 이야기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선생님께서는 소년시절부터 자신에게 철저하고 혹독하셨다.

생각 주머니에 먹구름이 끼려하면 성성자의 맑은 종소리로 생각을 깨끗이 하고, 마음에 조그마한 욕심이 싹트면 무서운 칼로 그 욕심을 말끔히 베어 내셨다. 그렇게 선생님께서는 늘 경과 의를 실천하셨다.

경이란 늘 단정한 몸가짐이다. 어떤 일에도 게으르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기더라해도 거리낌없이 행동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자세이다.

의란 그런 마음을 올바르게 실천하여, 일의 끝날 때를 잘 알아 깨끗하게 마무리하는 자세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참다운 용기와 올바른 판단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다.

천재이셨지만 평생 학업을 게을리 하신 적이 없이 늘 노력하시니 경의 자세요, 그 높은 학업이 명예와 부를 누리는 데 쓰이지 않고 제자를 가르쳐 훗날을 밝게 하셨으니 의를 실천하신 것이다. 또 참다운 용기가 없었다면 죽음을 무릅쓰고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바이올린을 빨리 시작했다. 그러니 또래보다 잘 한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 자만심이 생겨 연습을 게을리 하다가 이번 음악회에서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선생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던 경과 의를 실천하지 않은 것이다. 요즈음 신문에는 옳고 좋은 기사보다는 나쁘고 어려움을 고발하는 기사가 더 많다. 선생님의 '경과 의' 정신을 익히고 실천한다면 뇌물 받는 정치인도, 남의 재산을 탐내는 아저씨도,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아주머니도 모두 사라질텐데…….

나는 이렇게 어려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어린이들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니까. 우리가 작은 것부터 선생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 된다. 거짓말하지 말고 교통질서를 잘 지키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며 환경보호에 힘쓰는……, 이렇게 작은 일부터 해보자. 그리고 한번쯤은 참다운 용기를 내여 잘못하는 어른들께 선생님께서 주신 성성자의 맑은 종소리도 크게 한 번 울려보자. 우리는 반드시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훌륭한 조식 선생님의 후손이니까.

어느 광고에서 "미래는 운명이 아니라 노력입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곧 미래이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노력한다면 더욱 올바른 세상이 될 것이다. 선생님이 말씀은 우리의 밤낮을 밝혀 줄 해와 달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번 방학에도 우리 가족은 겨울 나들이를 떠난다. 하지만 오늘은 나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 귀여운 동생까지 모두의 가슴은 콩콩 뛰고 있다. 이제는 우리 가족 모두가 선생님의 팬이 되었다. 특히 선생님께 푹 빠지신 우리 어머니께서는 설레는 마음이 꼭 눈 온 날 이리저리 뛰는 강아지 마음 같다고 하셔 우리 가족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흰 눈 내리면 찾아뵙겠다고 했던 선생님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산천재로 향한다.

멀리 두류산의 흰 눈과 우뚝 선 소나무는 오래된 친구처럼 너무 잘 어울린다. 아름다운 경치가 우리 집 거실의 산수화를 뚝 떼어다 놓은 듯 하다. 선생님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흰 눈이 하나 둘 떨어지고, 저 멀리에서 선생님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