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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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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김충렬/편집인:김경수/발행처:사단법인 남명학연구원/주소:경남 진주시 봉곡동 14-21 /전화:(055) 748-9147~8 |
퇴계ㆍ남명 탄신 500주년 기념행사로 작년 9월 26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개최된 학술회의의 발표논문집을 입수하여 읽어보던 중, 경상대학교 한문학과의 최석기 교수가 쓴 「남명학파의 지리산유람과 남명정신 계승양상」이라는 논문의 주석 8번에서 나의 견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접했다. 그 부분의 본문에서는 '남명은 58세 때까지 지리산을 12번 유람하였는데'라 하고, 그 주석에서 '오이환 교수는「南冥遺跡三洞辨證」(『南冥學硏究』 제10집, 경상대 남명학연구소, 2001)에서, 아래 인용문의 '入靑鶴神凝洞者三'을 청학동ㆍ신응동을 각각 3번씩 유람한 것으로 해석해 모두 15번 지리산을 유람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필자는 원문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되어 있다.
나는 최 교수가 언급한 위의 논문 가운데서 흔히들 말해지는 남명과 지리산과의 관계에 대해 자신이 조사해 본 결과 가지게 된 견해를 포괄적으로 피력한 바 있었는데, 남명의「유두류록」말미에 언급된 지리산 유람 경력 부분 전체를 번역 인용한 후, 그 주석 14번에서 남명이 '靑鶴ㆍ神凝洞으로 들어간 적이 세 번'이라 언급한 부분을 청학동과 신응동을 합해 세 번이 아니라 청학동과 신응동을 각각 세 번씩 들어갔다고 해석하는 이유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였으나, 최 교수는 나의 근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이 논문이 이미 탈고되었으나 아직 발표되기 전이었던 2000년 7월 22일에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 프로에「조식이 지리산에 열두 번 오른 까닭은」이라는 것이 있었다. 최 교수와 나는 모두 이 프로에 출연하였는데, 당시 나는 담당 PD에게 '열두 번'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말한 바 있었지만 전문가도 아닌 그는 웬일인지 나의 의견을 선선히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이와 같은 프로에 횟수가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점에 대해 나로서도 동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서 적당히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러나 최 교수는 남명을 비롯한 우리나라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과 관련하여 이미 몇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단행본까지 출간하여 이 방면에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서 자타가 인정하는 터인데, 최 교수의 한 마디로 말미암아 이제 남명이 지리산에 들어간 횟수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지고 말 상황이 되었으니, 이 문제는 더 이상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해 버릴 성질의 것이 아닌 듯하다.
현재의 내 의견이 반드시 그 논문을 발표하던 당시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최 교수의 글을 읽고서 여러 달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쉽사리 수긍이 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는 달라진 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그 논문을 쓰기 전까지는 문제의 초점이 된 그 부분을 최 교수와 같이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이미 주석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남명이 「유두류록」4월 23일 조에서 神凝寺에 대해 언급하며, '예전에 成仲慮와 더불어 상봉으로부터 와 찾은 적이 있었는데, 삼십 년에 가까우며, 후에 河仲礪와 더불어 여름내 와서 거처한 적이 있었는데, 또한 20년이 넘었다.(昔與成仲慮自上峰來尋, 近三十載, 後與河仲礪全夏來栖, 又出二十載)'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대목에 주목한 까닭이었다. 「유두류록」은 남명이 58세 때 쓴 것이므로, 남명은 그로부터 30년 전에서 20년 전까지, 즉 그의 나이 28세에서 38세까지의 사이에 적어도 이미 두 차례는 이 절을 방문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남명은「유두류록」말미에서 자신이 지리산을 찾은 장소와 그 횟수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어찌 오직 산을 탐하고 물을 탐하여 가고 오는 번거로움을 꺼려하지 않은 것이겠는가? 한평생 지녀온 계획이 오직 華山의 반쪽을 빌어 늘그막 여생을 마칠 장소로 삼고자 할 따름이었다. 일이 마음과 어긋나 머무를 수 없음을 알고서, 서성거리고 되돌아보며 생각하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나오곤 했던 것이니, 이렇게 하기 열 번이었다.' 하고, 또한 자신이 일찍이 지었던 시를 소개하며 '황소 갈빗대 같은 두류산 열 번 답파하더니(頭流十破黃牛脇)'라고 하였다. 여기서 언급된 '華山의 반쪽'이란 『書經』 周書, 武成篇에, 그리고 '黃牛'란 『周易』 遯卦 六二 및 革卦 初九의 爻辭에 출전을 두고 있음은 역시 상게 졸고의 주석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것들은 모두 은둔을 의미하는 말로서, 남명이 이러한 장소를 찾은 이유가 역시 주로 만년을 보낼 은둔의 장소를 물색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방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볼 때, 28세에서 38세 사이의 나이란 '늘그막 여생을 마칠 장소(終老之地)'를 찾으러 다니기에는 너무나 이른 나이가 아니겠는가?
역시 前揭 졸고에서 이미 언급한 바이지만, '頭流十破黃牛脇'이라는 구절은 남명이 52세 무렵에 쓴「次湖陰題四美亭韻」의 제2수 제4연에 보이는데, 이 시의 제1수에는 '깊은 골짜기 백 번 뚫고 들어갔어도 몸은 아직 나그네이고(百穿深壑身猶客)'라는 구절이 보인다. '十破'와 '百穿'은 유사한 표현으로서, 이 역시 남명이 자신의 은거할 장소를 찾아 깊은 산 속을 수없이 헤매고 다녔으나 아직 정착할 곳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남명이 만년을 보낼 장소를 찾아다닌 것은 주로 김해 생활을 청산하고서 고향인 삼가로 돌아온 중년 이후부터이니, '두류산을 열 번 답파'했다 함은 그러한 목적으로 위에서 열거한 장소들을 방문했던 것을 대충 언급한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굳이 청학ㆍ신응동을 각각 세 번씩이라고 해석하지 않더라도 남명이 중년 이전에도 지리산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남명이 말하는 청학동, 즉 지금의 쌍계사 위 불일폭포 일대와 신응동, 즉 지금의 신흥마을 왕성초등학교 일대는 같은 하동군 화계면에 위치하여 지도상의 거리로는 비교적 가깝지만, 진입하는 코스가 전혀 다르고 중간에 서로 연결되는 지름길도 없으므로, 남명이 이 일대를 방문할 때마다 두 장소를 모두 들렀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당시로서는「유두류록」에서 남명 일행이 경유하였듯이 쌍계사 입구에서 계곡 길을 따라 七佛溪를 지나 신응사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을 터인데, 쌍계사에서 칠불계, 즉 지금의 신흥삼거리까지의 거리는 약 5.5킬로미터이며, 청학동은 쌍계사로부터 가파른 산길을 타고서 다시 3킬로 정도 더 올라간 지점에 위치해 있어서 누구나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성락건 저『남녘의 산』; 1/10만 도로지도 참조) 이 글 4월 19일 조에서 남명은 자신이 과거 청학동의 선경에 세 번 노닐었음을 말하면서 일행 중 다른 사람들의 예를 들어 '빼어난 절경에는 그에 상응하는 정도의 眞訣이 없이는 神明이 받아들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당시로 보아서 청학동은 그만큼 일반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던 것이다.
남명의 28세부터 38세까지의 시기는 삼가 판현동에서 부친의 삼년상을 마치고 의령 자굴산의 명경대에 왕래하면서 독서하다가, 이윽고 김해의 처가 동네로 옮겨 산해정을 짓고 지내며 때때로 과거에 응시하고 처음 참봉 벼슬을 제수 받은 시기까지이다. 필자는 작년 9월 25일과 10월 20일에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동방의 빛 남명 조식」에서 경상대 한문학과의 이상필 교수가 명경대를 안내하며 그곳이 남명 학문의 일대 전환이 이루어진 현장이라고 강조하여 설명하는 것을 시청한 바 있다. 그러나 연보 등에 의하면, 남명 학문의 큰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25세 때 벗들과 더불어 산사에서 과거공부를 하다가『성리대전』속에 나오는 許魯齋의 문구를 읽고서 爲己之學에 전념하기로 결심한 때이며, 당시는 남명이 주로 서울에서 생활하던 시절이니, 그러한 발언 역시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또 한 가지 언급해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작년 10월 23일에 개관한 남명학관 입구의 표지석 뒷면과 덕산의 산천재 입구 관리사 앞 광장의 詩碑에 새겨진 「題德山溪亭柱」의 번역문 문제이다. 이 두 글은 모두 경상대 한문학과의 허권수 교수가 번역하고 같은 학과 강사 윤효석 씨가 글씨를 쓴 것이다. 후자는 경상남도 측이 남명선생 탄신500주년을 기념하여 남명과 유관한 장소들에다 남명제 이전까지 모두 열다섯 개의 시비를 세울 계획을 수립하고서 그 해 6월경에 사단법인 남명학연구원 측에다 사업을 위촉해 왔었던 것인데, 당시 연구원으로서는 국제학술회의 행사가 목전에 닥쳐 있어 그 작업을 병행할만한 여유가 없었던 지라 결국 경상대 남명학연구소로 위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두 비석에 새겨진 번역문과 같은 해 10월중에 출판된 개정판『남명집』에 수록된 허 교수의 번역문은 그 의미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으나 표현 상에 각각 조금씩 차이가 있다. 먼저 起句의 '請看千石鍾'에 대해, 책에서는 '천 섬을 담을 수 있는 큰 종을 보소서!'라고 번역하였고, 산천재 시비에는 '천 섬 들어가는 큰 종을 보소서!', 남명학관 앞에는 '천석들이 큰 종을 보소서'라고 되어 있다. 즉 '천 섬의 곡식을 담을 수 있는 큰 종을 보라'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한자의 石에는 부피의 단위(量名)로서의 의미와 무게의 단위(衡名)로서의 의미가 있다. 또한 한자의 鍾에도 분명 곡식을 담는 부피의 단위로서의 의미가 있으나, 이 시의 경우는 물건을 담는 도구를 말한 것이 아닌 만큼 천 섬의 곡식과는 상관이 없고, '천 석이나 되는 쇠를 부어 만든 저 종을 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承句의 '非大無聲'에 대해서는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 없다오'라고 하여 세 번역이 모두 일치하고 있다. 그런데 남명집의 이 부분 주석에서 허 교수는 '『禮記』「學記篇」에 "질문에 잘 답하는 것은 종을 치는 일과 같다. 작게 치면 작게 울리고, 크게 치면 크게 울린다"라는 말이 있다. 즉, 선생은 종이고 학생은 치는 사람이다. 질문을 잘하면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운운이라 하였다. 종 치는 것을 비유로 삼았다는 점에서 유사한 표현이기는 하나, 사제간의 문답법을 설명한『예기』의 이 구절이 과연 出仕의 문제와 관련한 남명 시의 出典이 될 수 있을지 다소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고 하겠다.
그 轉ㆍ結句의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에 대해, 『남명집』에는 '어떻게 하면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산천재 시비에는 '어떻게 해야만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그리고 남명학관 표지석에는 '어떻게 하여야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 첫머리에 보이는 '爭' 자는 『助字辨略』에 '爭, 俗云, 方言如何也'라고 설명된 바와 같이 '어찌 즘' 즉 오늘날 白話文의 ''와 같은 뜻인데, ''과 '爭'은 옛 중국 음이 거의 같으므로 古代에 서로 통용한 것이다. 그런데 허 교수의 해석은 남명의 시적 자아인 천석종의 소리가 웅장하기는 하나 영원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지리산의 경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여 지리산을 흠모해 닮고 싶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같은 시 가운데서 첫 두 구절은 시인이 제3자의 입장에 서서 천석종을 바라보라고 했다가, 뒤의 두 구절에서는 다시 스스로 종의 입장에서 주관적 소망을 피력하는 셈이 되어 시점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며, 그렇지 않다면 앞의 두 구절 역시 천석종이 제3자에게 스스로를 보아달라고 선전하는 형세가 되어, 어느 쪽으로 보아도 궁색한 해석이 되고 만다.
이 시는 '壁立千'으로 일컬어져 온 남명의 기상을 잘 드러낸 대표작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에 대해 象村 申欽 같은 이는 '그 詩韻이 豪壯할 뿐 아니라 自負 또한 얕지 않다'(「睛窓軟談」 下)고 평하였다. 허 교수의 해석은 이러한 평가에 훨씬 못 미칠 뿐 아니라, 매 구절마다에 논란의 여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나는 천석종과 지리산을 대등한 위치에 두고 또한 시 전체에서 제3자의 관점을 취해, 이 구절을 '어찌 두류산을 닮아/ 하늘이 울어도 오히려 울지 않는가'라고 번역하는 편이 남명의 原義에 가까우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표지석을 지나 남명학관의 정면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쪽 벽면의 板石에 새겨진「南冥學館記」가 눈에 들어오는데, 그 역시 허권수 교수의 글과 윤효석 씨의 글씨로 되어 있다. 그 기문의 말미는 '앞으로 이 南冥學館은 南冥學 硏究의 總本山으로서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나라의 學問과 文化를 硏究普及하는 中心基地로서 機能을 충실히 할 것이다'라고 맺어져 있다. 나는 이 구절 또한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남명학 연구의 총본산'이라는 말이 대외적으로 불필요한 잡음을 불러일으킬 소지를 내포하고 있으며, 국학연구의 중심기지가 된다는 표현은 한문학과가 내내 이 건물을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어 대내적 불협화음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상대학교가 역사적으로 남명학파의 중심지였다고 할 수 있는 진주에 위치한 국립종합대학교이며, 이 건물을 짓는 과정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애초의 예산보다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과적으로 건물 값만 46억 원이나 들었으니, 외형적인 면에서는 남명학의 총본산이라 자칭해도 큰 무리가 없겠다. 그러나 퇴계학 쪽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경북대ㆍ안동대ㆍ단국대 등 세 군데의 대학에 퇴계의 이름을 단 연구소가 있으나 그 어느 것도 퇴계학 연구의 총본산임을 자칭하고 있지는 않으며, 굳이 그러한 명칭을 붙인다면 사단법인 퇴계학연구원이 전국적 혹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퇴계학 연구의 중심적 위치를 지켜 왔다고 볼 수 있겠다. 뒤늦게 출발한 남명학의 경우도 남명학연구원이 최초로 설립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사단법인으로 된 배경에도 퇴계학연구원의 모델을 따른 면이 없지 않은 것이다. 하물며 지금은 남명학 연구가 확산되어 국내외적으로 연구단체가 여러 개 설립되어 있는 터인데, 남명학연구소 측이 총본산을 자칭함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대학교에 소속된 연구소가 특정 인물의 명칭을 달아 그것만을 연구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으니 만큼, 명칭이 표방하고 있는 이외의 분야에까지 연구 범위를 확대한다는 것 자체에는 그다지 무리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남명학연구소는 처음 '남명학의 제분야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국학 관계 논문 및 국학과 유관한 동양학 관계 논문'에까지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간행된 이 연구소의 기관지『남명학연구』 제11집(2001년)의 뒷면에 보이는 후원회 회원 모집 광고에서는 '우리 영남 지역 國學硏究의 중심기관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하고, 한적ㆍ고문서 등의 기증을 요청하는 광고에서는 남명학관의 완성과 더불어 '이제 명실공히 영남 지역 국학 연구의 본산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선포하고 있으니, 남명학연구소의 중심이 국학에 두어져 있음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이왕 연구범위를 확대하기로 한다면 왜 동양학 일반은 안되고 국학까지로 한정해야 하며, 또한 '국학과 유관한 동양학'이란 표현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결국 남명학연구소의 설립 이래로 한문학과가 그 주도권을 잡아 자기중심적으로 연구소를 운영해 온 사실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 남명학관은 현재 3층에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방 세 개를 국제지역연구원ㆍ경남문화연구원ㆍ인문학연구소 등 세 개의 인문사회계열의 학내 연구 기구에 내어주고 있는 이외에는 대체로 다 남명학연구소가 사용하고 있다.
특히 남명과 관련된 이름을 붙인 보통 연구실의 두 배 혹은 그 이상 되는 넓이와 고급 내장을 갖춘 네 개의 공간은 '실제로 일할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는 명분으로 연구소의 부장들에게 배정되었는데, 다른 전공의 부장 한 명에게 배정된 따로 떨어진 천왕실에는 아직 본인이 들어오지 않고 있고, 그 반대쪽 끝에 함께 인접한 산천실ㆍ뇌룡실ㆍ산해실은 각각 한문학과의 장원철ㆍ이상필ㆍ최석기 교수에게 배정되었으나, 장 교수는 끝내 고사한 까닭에 몇 달이 지난 후 마침내 소장인 허권수 교수가 들어가게 되었다. 이 연구실들은 원래 소장의 지명에 의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행정 실무의 담당자인 부장들이 아니라 남명학의 연구를 실제로 수행할 학자들에게 배정하기 위해 특별한 설비를 갖추어 마련된 것이었다. 한문학과에서는 일찍이 공사가 진척되고 있는 단계에서부터 학과 전체를 이 건물 안으로 옮기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었는데, 결국 여섯 명의 전임교수 중 남명학에 관한 연구 논문이 있는 네 명이 모두 이 건물 내에 공간을 배정 받았고, 그 외에 연구소사무실이나 중앙도서관 한적실의 소장 도서 전체를 옮겨온 2층의 文泉閣에까지도 한문학과 재학생이나 졸업생이 배치된 것을 감안한다면, 그 목표가 십분 달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나는 일찍이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를 일러 '한문학과 부설 연구소'라고 평한 바 있었는데(『남명학파연구』 상권, 472-473쪽 참조), 『남명학연구』제11집에 명단이 보이는 편집위원 여덟 명 중 위쪽에 열거된 한문학과 소속의 네 교수에게는 한국한문학이라는 전공영역 외에 각각 세부적인 연구 분야를 덧붙였고, 후원회 회원 가입 연락처로는 허권수ㆍ최석기ㆍ이상필 교수의 연구실 전화번호를 적어 그들이 사실상 이 연구소의 주인임을 시사하였다. 즉 위원장인 허권수 교수는 '동양고전학', 위원인 최석기 교수는 '한국경학 전공', 이상필 교수는 '영남학맥 전공', 장원철 교수는 '한중일 비교문학'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면 결국 한문학과 교수들은 자신의 전공 영역을 그 원래의 의미인 국문학의 한 영역으로서의 한국한문학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문으로 적힌 모든 문헌을 다루는 전통적 의미의 漢學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 중 남명학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상필 교수 한 사람만이 남명학 전문가로 간주될 수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봉건왕조 시대에 학문 자체를 지칭하는 개념이기도 하였던 한학이 국문학ㆍ중문학ㆍ국사학ㆍ동양사학ㆍ한국철학ㆍ중국철학 등 여러 전공 분야로 나뉘어져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 나는 구태여 학제적ㆍ거시적 접근법이 필요하고도 중요함을 부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명이 '玩物喪志의 尤物'이라고 평가했던 한국 한시문학이라는 영역을 담당한 한문학과가 한문으로 적힌 모든 문헌을 자기 고유의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오리지널한 연구실적물을 창조해 내는 것을 소임으로 삼아야 할 연구소가 한문강좌를 통해 서당식 한문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마치 내세울 만한 사회봉사나 되는 듯이 표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남명학당은 원래 남명학 '전문연구자의 양성'을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나, 남명이 이제 한국의 10대 사상가 중 한사람으로까지 평가되고 있는 마당에 이르러서는 그와 같은 연구자는 구태여 양성할 필요도 없이 날로 늘어나고 있으며, 지금의 남명학당은 그러한 명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봉건 시대의 서원 교육을 계승함을 표방하고 있다. 사실에 있어서 이와 같은 한문강좌는 처음부터 경상대 한문학과가 대외적인 자기 홍보를 목적으로 시작했던 것인 만큼, 그것이 굳이 필요하다면 한문학과의 자체 예산이나, 과거에 한 때 그러했던 바와 같이 외부의 스폰서를 구해 실시하면 될 것이고, 연구소 예산의 상당 부분을 거기에 투여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위에서 든 네 명 혹은 세 명이 중심인물이라고 하지만, 사실상에 있어서는 연구소 설립이래 계속 연구부장의 직책을 맡아보다가 지금까지 3기에 걸쳐 소장의 직위를 연임하고 있는 허권수 교수 한 사람이 중심으로 되어 이끌어 가고 있는 남명학연구소가 과연 남명학연구의 총본산이 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시간적 여유를 두고서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나는 1998년에 발행된『南冥院報』제12호에「雷龍亭 遺蹟碑 有感」이라는 글을 기고하여 남명학연구소 측이 삼가의 뇌룡정 입구에 세운 짧은 비문 속에 무려 여덟 군데나 되는 오류 혹은 부적절한 표현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로부터 적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 글을 기초한 허권수 교수나 공동으로 윤문한 한문학과 교수들이 그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거나 그 비문을 수정 혹은 철거했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하였다. 만약 나의 지적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비석을 언제까지나 방치해 둔다는 것은 良識을 결한 행위일 것이다. 이번의 글에 대해서는 어떠한 반응이 있을지 독자들과 함께 기다려 보고자 한다.
